[스크랩] The Carter Family Story
The Carter Family Story
Carter Family Wildwood Flower 1928
카터패밀리..(A.P Carter,Sara Carter,Maybelle Carter)
미국의 컨트리,포크 역사에서 빼놀수없는 전설적인 그룹이다.
'컨트리뮤직의 아버지'라는 지미로저스와함께
1927년 최초상업적인 레코드 발매로
'컨트리뮤직의 어머니'란 명예를 안았다.
멤버중 대들보격인 메이벨카터 의 기타연주법은 컨트리와포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는데 메이벨이 창조한 기타 주법은
‘카터 피킹(Carter Picking)’연주법 이라하여 조율을 할 때
기본적인 기타의 음보다 낮게 튜닝을 한 다음, 베이스로 멜로디를 표현해내고
고음 줄로 리듬을 처리하는 방식으로
지금은 컨트리 음악, 특히 블루그래스 음악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기타 테크닉이지만,
192,30년대 당시만 해도 감히 생각지도 못한 파격적인 연주법이었다.
깁슨 L-5기타를 가지고, 독특한 테크닉으로 후일 블루그래스 기타 주법의 전형을 제시했고,
동시에 오토 하프 (지금의 크로마 하프)를 연주했다.
Maybelle Carter jamming out on her autoharp
카터 패밀리는 1928년부터 빅터 레코드사와 계약을 체결하고,
‘Wabash cannonball’, ‘I’m thinking tonight of my blue eyes’,
‘John hardy was a desperate little man’, ‘Wildwood flower’,
‘Keep on the sunny side’ 등의 주옥같은 컨트리 명작들을 발표했다.
특히 1928년에 발표한 ‘Wildwood flower’는 컨트리 기타리스트라면,
꼭 한 번 탐구하고 넘어가야만 하는 명곡으로 평가받고 있다.
The Carter Family - Wildwood Flower
쳇애킨스도 내쉬빌에 정착하기 이전에 이들을 따라다니며
음악경력을 쌓았고 피아니스트 플로이드 크래머도
피아노의 저음사용 주법을 바로 메이벨 카터의 기타연주법에서
도입한것으로 알려지고있다.
Chet Atkins - Wildwood Flower - Oslo 1964
1929년 카터 패밀리는 전국적인 스타로 발돋움했지만,
곧바로 닥쳐온 대공황으로 인해 미국 전역을 돌며 가질 예정이던
순회 공연이 불가능하게 되는 등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결국 돈이 궁해지자, 멤버들은 일자리를 찾기 위해 고향 버지니아를 떠나야만 했다.
A.P.는 디트로이트로 향했고, 메이벨은 남편과 함께 워싱턴에 정착했다.
그룹의 내리막길은 계속 됐다. A.P.는 사라와 1932년 별거에 들어갔고,
7년 뒤인 1939년 이혼을 했다.
그러나 이런 와중에서도 카터 패밀리는 텍사스와 멕시코의 국경 지대에 있는
라디오 방송국에서 공연 활동을 이어나갔고,
데카(Decca), 콜롬비아(Colombia), 빅터 레코드사 등을 거치며
음반 작업도 꾸준히 했다.
하지만 1943년 사라가 새 남편 코이 베이즈(Coy Bayes)를 따라
캘리포니아로 이주하면서, 카터 패밀리의 신화로 막을 내렸다.
1952년 A.P.와 사라는 자녀들과 함께 카터 패밀리를 재결성,
100 여 곡을 발표하고, 공연 활동도 했지만,
변화된 음악 패턴을 읽지 못하고, 1956년 해체했다.
그로부터 4년 뒤 A.P.는 세상을 떠났다.
Helen Carter and the Carter sisters - Wildwood Flower
이후 홀로남은 메이블은 딸 헬렌,준,애니타와함께
그룹활동을 계속했고 그뒤 그녀의 손자,손녀들이 카터패밀리를
3대째 이어간다고한다.
그리고 1966년 듀엣으로 활동하기도 했던, 메이벨과 사라는
1978년과 1979년에 각각 유명을 달리했다.
앞서 1970년에는 컨트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 CD로 복각되어 현재 판매되고 있는
< The Carter Family : 1927-1934 Box Set > (Original Recording Remastered)
5장셋트를 소장하고있습니다만 1번이 아쉽게 분실되어
4장만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