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한반도는 지구상에 남은 유일한 분단지역이라고 말하지만 또 하나의 분단국가,
아일랜드(남아일랜드는 국토의 5/6를 차지한 아일랜드 공화국.북아일랜드는 영국지배)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또한 지구상에서 한국인들과 가장 많이 닮은 사람들이 있다면 두말할 것도 없이 아일랜드인들이다.
이탈리아사람을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자기 민족이야말로 가장 순수하며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맹목적
애국심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자신들의 역사가 가장 비참하고 비극적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우리와 매우 닮아 있다. 그래서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슬픈 아일랜드인’이라고 스스로 이야기 한다.
기가 막힌 사실은 일본인들이 “한국은 우리의 아일랜드”라고 하면서 영국의 식민정책을 모방하여
조선에 대한 식민지배를 했다는 것이다. 토지수탈이나 언어말살 등 식민지의 경험이 유사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이다. 이러니 안 닮을 수 있겠는가!
감자 대기근(The Great Hunger, 아일랜드어: An Gorta Mór 혹은 An Drochshaol)과 잉글랜드에 대한 증오
12세기 말부터 시작해 본격적인 식민화가이뤄진 16세기 튜더(Tudor) 왕조이후 영국의 수탈 정책으로 대규모
식민농업이 이뤄지던 무렵 감자를 주식으로 삼고 있던 아일랜드에 1845년부터 감자 역병(疫病)이 발생하여
1846년부터는 기근이 서서히 표면화되기 시작한다. 1847년부터 기근과의 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1851년까지
무려 200만명이 굶주려 죽거나, 아일랜드를 지배하던 영국 왕정에 대항해 싸우다 또 수많은 사람들이 감옥에 갇혀,
그들 중 식민지 총독부에 의해 찍힌(?), 죄질이 나쁜 죄수들은 그 당시 영국의 새로운 식민지 호주로 멀리, 강제 이주되고
나머지는 자국의 궁핍을 견디지 못하고 대서양을 건너 미국등으로 이민을 떠나는 (미국대통령 존.F.케네디도 이때 떠난 이민자의
후손) 세계역사에 유례가없는 최대의 대기근,이민 사건이 발생 하였다.
당시 영국의 소극적인 구조활동 때문에 아일랜드인은 지금까지도 우리가
일본에 대해 느끼는 감정보다 더한 원한을 갖고 있다.
당시를 목격한 한 미국 언론인은 다음과 같이 적고있다.
"이 나라에는 지금도 많은 수의 사람들이 굶어 죽어나가고 있다. 그러나 벨파스트항에는 외국으로 가는 곡물이 더 많다.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미국에서 오는 옥수수를 실은 배 한 척이 구호선의 전부이다.그 옆에는 영국으로 가는 수많은 곡물선이 있다. "
"대기근 당시의 참상을 그린 작품"
"대기근 기념 조형물"
The Fields of Athenry
1.
By a lonely prison wall, I heard a young girl calling
"Michael, they have taken you away
For you stole Trevelyan's corn
So the young might see the morn'
Now a prison ship lies waiting in the bay"
외로운 감옥 벽사이로 울려지는 젊은 여인의 음성을 나는 듣습니다.
"마이클,
배고파 우는 아이들에게 양식을 주려고
트레벨리언 백작 창고의 옥수수를 훔쳤다는 이유로
그들은 당신을 철장에 가두었어요.
당신을 잡아갈 감옥선이 이미 항만에 선착, 당신을 기다리고 있군요."
Low lie the fields of Athenry
Where on-ce we watched the small free birds fly
Our love was on the wing
We had dreams and songs to sing
It's so lonely 'round the fields of Athenry
자그마한 한 마리 새가 자유의 몸으로 창공을 날던 모습을
한때 우리가 지켜보았던 아텐라이 평원이 지금 우리 앞에 낮게 펼쳐져 있군요.
우리들의 사랑은 그 날개 위에 있었으며,
우리에겐 꿈이 있었고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있었죠.
그러나 그 아텐라이 평원에 지금은 외로운 적막만이 가득 하군요.
2.
By a lonely prison wall, I heard a young man calling
"Nothing matters, Mary, when you're free
Against the famine and the crown
I rebelled, they ran me down
Now you must raise our child with dignity"
외로운 감옥 벽사이로 울려지는 어느 젊은 남자의 음성을 나는 듣습니다.
"메리, 당신이 자유의 몸이 될때, 그것들은 아무 문제도 되지않을 거요.
나는 우리를 압박하는 영국 왕정과 기근에 맞서 싸웠고
그들은 나를 사슬에 묶어놨소.
당신은 반드시 우리 아이를 훌륭하게 키워야 하오."
3
By a lonely harbour wall, she watched the last star falling
As the prison ship sailed out against the sky
For she'll live in hope and pray for her love in Botany Bay
It's so lonely 'round the fields of Athenry
외로운 부둣가 벽 사이로 그녀는 남편을 태운 감옥선이 수평선 너머로 사라질때
하늘의 마지막 별이 떨어지는 것을 볼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먼 보트니 만에 있는 사랑하는 남편의 안전을 소망하며 그를 위해 기도드리는 삶을 살겠지요.
그 아텐라이 평원에 지금은 외로운 적막만이 가득 하군요.
The Fields of Athenry가 원래 아이리쉬 사람들에게는 우리네 한국인들의 "아리랑"과 같이 아픔과 한이 서려있는 노랜데 그들은 이 노래를 응원가로도 승화시켜 부르기도 하며
아이리쉬 사람들의 슬픈 역사를 마이클이라는 한 젊은 남자와
그 가족이 당했던 가슴 아픈 사연을 서정적인 노래 형식에 담아 들려 줍니다.
마이클은 굶주린 아이에게 양식을 주려고 그당시 악명 높았던 식민지 총독 트레벨리안 백작의 창고에서 옥수수를 훔친 죄목으로
감옥에 가고, 급기야 먼 호주의 Botany Bay 수용소로 끌려가게 됩니다. 한 순간에 생이별 당하게 된 젊은 남편과 아내의 슬픈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