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south carolina, therere many tall pines I remember the oak tree that we used to climb But now when Im lonesome I always pretend That Im headin the field of hickory wind
I started out younger, had most everything All the riches and pleasures, what else can life bring? But it makes me feel better each time you begin Callin me home, hickory wind
Its a hard way to find out that trouble is real In a faraway city with a faraway feel But it makes me feel better each time you begin Callin me home, hickory wind Keeps callin me home, hickory wind
The Byrds는 1964년 LA에서 Jim McGuinn(기타, 리드보컬), David Crosby(기타, 보컬), Gene Clark(탬버린, 보컬)의 라인업으로 결성되었다. LA의 클럽을 무대로 Jet Set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던 이들은 Beefeaters라는 이름으로 첫 싱글 ‘Please Let Me Love You’를 발표하며 정식 데뷔한다.
데뷔 당시 이들의 음악은 folk-pop이라는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60년대 초반 유행하던 포크의 기본을 따르면서 무겁지 않은 음악으로 Pop적 친화력을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은 곧 Michael Clarke(드럼), Chris Hillman(베이스)를 영입하여 Rock 밴드로서의 면모를 갖춘 후 Byrds로 이름을 바꾼다.
65년 Columbia와 계약을 맺고 시작된 이들의 활동은 시작부터 엄청난 호응을 불러 일으키며 록계의 전설로 자리잡아나간다. 그들이 발표한 첫 싱글은 포크의 전설 Bob Dylan의 [Bringing It All Back Home](65년)에 수록되어 인기를 얻었던 ‘Mr. Tambourine Man’이었다. 미국 신인 밴드의 첫 싱글은 예상치 못한 인기를 이끌어내며 차트 정상을 차지하게 되고 이들은 여세를 몰아 데뷔 앨범인 [Mr. Tambourine Man]을 발표한다.
당시 이들의 대 성공은 음악 내, 외적인 측면에서 모두 의미 있는 것이었다. British Invasion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내며 영국 록 밴드들이 미국 음반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당시의 분위기 속에서 미국 출신의 신예 밴드가 정상을 밟은 것은 미국인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주는 것이었다. 경제력으로 영국을 압도하고 있으면서도 문화적인 면에서 영국에게 주도권을 내어주고 있던 당시의 미국인들에게는 미국적인 것이 간절히 필요했고 그 요구에 부합한 밴드가 바로 The Byrds였다. 이들의 성공은 The Monkeys나 The Bands와 같은 미국 밴드들이 성공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고 길게는 The Eagles를 거쳐 R.E.M.의 사운드를 만들어내고 90년대 이후의 America Roots-Rock 밴드들이 탄생하게 되는 음악적 발판이 되기에 이른 것이다.
이들의 성공은 음악 내적인 면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들이 시도한 음악은 Folk-Rock이라는 파격적인 음악이었다. 65년 당시 Bob Dylan이라는 Folk의 전설적 아티스트가 일렉트릭 기타를 들고 무대에 올랐을 때 대중은 그에게 계란 세례를 퍼부었다. 포크록의 탄생이라는 음악사적으로 중요한 순간이었음에도 이미 Dylan=Folk라는 공식으로 그를 바라보았던 대중들에게 그가 시도한 비틀즈적 사운드와의 결합은 배신이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The Byrds라는 신인 밴드의 똑 같은 시도는 Dylan이 변화된 모습으로 대중에게 다가설 수 없었던 것과는 다른 의미로 대중에게 전달 될 수 있었다. 이들의 포크록은 Dylan과 같은 개념의 시도였음에도 포크의 배신이 아닌 신인 밴드가 들고 나온 새로운 사운드의 록으로 인식되어졌던 것이다. 결국 이들은 포크 사운드와 일렉트릭의 결합을 시도한 최초의 록 밴드로 이름지어졌고 록 역사에 길이 남는 전설적인 밴드로 자리하게 된 것이다.
이들의 사운드는 Dylan의 영향 하에 있는 미국적인 포크 사운드를 가지고 있으면서 비틀즈로 대표되는 하모니와 일렉트릭 사운드를 간직하고 있었는데, 특히 Jim McGuinn의 12줄 기타사운드는 기타 사운드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을 들었다.
첫 싱글과 앨범을 히트시킨 이들은 Woodie Guthrie와 함께 포크 음악의 살아있는 선구자로 대접 받고 있는 Pete Seeger의 곡 ‘Turn! Turn! Turn!’을 리메이크하여 다시 한 번 넘버 원을 차지한다. 하모니가 살아있는 부드러운 사운드의 이 곡은 동명 앨범인 65년 3주 연속 1위를 차지했으며 30여 년이 지난 93년 영화 [Forest Gump] 사운드 트랙의 첫 싱글로 다시 커트되면서 영미권에서는 물론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다.
66년 발표된 ‘Eight Miles High’ 역시 인기와 파장이 대단했다. 이 곡은 사이키델릭이라는 당시의 시대적 흐름에 부합되는 사운드와 내용을 담고 있었는데 마약에 관한 노골적인 언급으로 라디오 방송에서 금지곡으로 판정받았지만 차트 14위에 오르는 놀라운 성적을 보여주었다. ‘Eight Miles High’를 수록한 66년작 [Fifth Dimension]과 67년작 [Younger Than Yesterday]는 미국을 대표하는 밴드의 완숙미 넘치는 곡들이 가득 수록되었는데 [Fifth Dimension]에서는 ‘Fifth Dimension’, [Younger Than Yesterday]에서는 ‘So You Want to Be a Rock ’n’ Roll Star’가 히트했다.
그러나 [Younger Than Yesterday] 이후 밴드는 서서히 분열되기 시작한다. 그룹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었던 McGuinn과 Hillman은 Crosby와 사이가 벌어졌고, [The Notorious Byrd Brothers] 이후 Gene Clark이 밴드를 떠나자 David Crosby와 Michael Clarke 역시 밴드를 떠나게 된다. David Crosby는 The Byrds를 떠나 웨스트 코스트 록을 탄생시킨 수퍼그룹 Crosby, Stills, Nash & Young의 멤버로 활동하게 된다.
McGuinn과 Hillman만이 남게 된 The Byrds의 음악은 좀 더 실험적인 형태로 흘러갔다. 대중성과는 점점 멀어져 갔지만 음악은 점점 다양한 형태로 발전해 간다. 일렉트릭, 포크의 기존 사운드에 사이키델릭한 기타 사운드가 점차 비중을 더해갔으며 컨츄리와 재즈 사운드가 이들 음악에 추가되기 시작한다. 떠난 멤버들의 빈자리에 들어온 Gram Parsons는 이들 사운드의 변화에 큰 역할을 담당하게 되는데 키보드, 보컬, 기타의 여러 분야에서 그룹의 주요한 사운드에 참여하기 시작한 그는 이들에 의해 처음으로 시도되는 컨츄리록 사운드를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Parsons를 가세시키고 새 드러머로 Kevin Kelly를 영입한 이들은 68년 최초의 컨츄리록 앨범으로 대접 받는 [Sweetheart of the Rodeo]를 발표한다. 하지만 이들의 이후 행보가 전처럼 쉽지는 않았다. 깊이 있는 가사를 담았던 이들은 이 앨범에 수록된 곡이 정치적으로 맞지 않아 남아프리카 공화국 공연이 취소되고 사이키델릭에 빠진 멤버들의 마약문제도 확대되면서 그룹은 해체 위기에 직면한다. 결국 그룹에는 McGuinn만이 남게 되고 원년 멤버는 모두 그룹을 떠나게 된다.(McGuinn은 히피 사조의 특징 중 하나인 동양 종교에 심취하여 이름을 Roger로 바꾸었다.)
Clarence White(기타), John York(베이스)를 영입한 Roger Mcguinn은 69년 [Dr. Byrds and Mr. Hyde]를 발표하였으며, 로드무비로 인기를 얻은 바 있는 영화 ‘Easy Rider’를 위한 앨범 [Ballad of an Eady Rider]를 같은 해 발표하여 ‘Jusus Is Just Alright’를 히트시킨다. 하지만 이후 이들의 인기는 급격히 떨어진다. 71년작 [Byrdmaniax]와 72년작 [Father Along]이 모두 실패했고 이들은 결국 미국 최고의 밴드로서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해체되고 만다.
밴드의 원년 멤버들이 모여 73년 [The Byrds]를 발표하여 그룹의 재 결합을 예상케 하기도 했지만 결국 이들은 The Byrds라는 그룹의 틀이 아닌 자신들 나름대로의 길에서 이름을 남겨 나간다. McGuinn은 솔로 아티스트로서 성공적인 활동을 이어가고, Hillman 역시 솔로 연주자와 Desert Rose Band 멤버로 자신의 길을 걸었으며, Crosby는 앞에서 언급한 Crosby, Stills, Nash & Young의 멤버로 명성을 날렸다.
이들은 91년 Rock & Roll 명예의 전당에 올랐고, 오랜 시간 팬들은 이들의 재결합을 기대했지만 91년 Gene Clark이 사망하고 93년 Michael Clarke마저 사망하면서 The Beatles와 마찬가지로 시대를 풍미한 전설의 그룹으로 영원히 남게 되었다.-웹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