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ney You Don't Know My Mind I'm Lonesome All The Time born To Lose A Drifter That's Me you Can Travel For So Long Then A Rambler's Heart Goes Wrong baby You Don't Know My Mind Today
heard The Music Of A Rail Slept In Every Old Dirty Jail and Life's Too Short For You To Worry Me when I Find I Can't Win I'll Be Checking Out Again baby You Don't Know My Mind Today
i've Been A Hobo And A Tramp My Soul Has Done Been Stamped lord Things I Know I Learned The Hard Hard Way i Ain't Here To Judge Or Plea But To Give My Poor Heart Ease baby You Don't Know My Mind Today
honey You Don't Know My Mind I'm Lonesome All The Time born To Lose A Drifter That's Me you Say I'm Sweet And Kind I Can Love You A Thousand Times baby You Don't Know My Mind Today
Tracklisting / Additional Info:
Widow Maker Honey You Don't Know My Mind White Dove Uncle Pen Rollin' In My Sweet Baby's Arms Taylor Made Sally Good Freeborn Man Sunny Side Of The Mountain Blue Moon Of Kentucky Foggy Mountain Breakdown Goodbye Old Pal Big Country
Year of Release:
1978 - 31 years old
Jimmy Martin (King of Bluegrass)
[활동 시작 시기]
위대한 블루그래스 리드 보칼 중 Jimmy Martin이 첫번째 인물은 아니다. 그러나 그는 블루그래스 음악에 딱 맞는 가수이며 블루그래스 가수로서 자기와 필적할 만한 상대를 갖지 못한 인물님으로 많은 사람들이 얘길 한다.
마틴이 처음 들은 블루그래스 곡은 MCA 사에서 나온 컨트리 뮤직 명예의 전당 시리즈 음반에서도 들을 수 있는 빌 먼로의 고
전인 ‘Uncle Pen’, ‘Walking To Jerusalem’, ‘On And On’ 등 이다.
들리는 얘기로는, 1949년, Grand Ole Opry에서 공연 중이던 빌 먼로를 만나러 테네시주 스니즈빌에서 한 젊은 공원이 찾아 왔다고 한다. 당시 빌 먼로는 자신의 밴드인 블루그래스 보이스를 막 떠나려고 하는 기타 연주자이자 싱어인 Mac Wiseman을 대신 할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었을 때였고. 지미 마틴은 이때를 회상한적이 있다고 한다. 내용은 대개 다음과 같은 얘기라고 하는데 그의 일면을 유추해 볼 수 있는 좋은 일화다.
나(Martin)는 테네시주 모리스타운에있는 공장에서 일하는 페인팅 숙련공이라고 했지. 동시에 나는 매일 아침 4시 30분부터 30분 동안 WCPK 방송국에서 연주를 한다고 했어.
그런데 공장의 반장이 내가 노래에만 너무 신경을 쓰고 직장에는 충실치 않다고 트집을 잡으며 ‘너는 나가서 노래나 실컷 해라’라는 말과 함께 나를 공장에서 해고했다고 했어.
나는 작업복을 벗고 일반 옷으로 갈아 입은 후 집으로 가는 도중 거리에서 우연히 나를 해고한 반장을 만났다고 했지. 그래서 나는 그에게 정중하게 일러주었다고 했어. 토요일 오후에 방송을 꼭 들으라고. Grand Ole Opry에서 빌 먼로와 함께하는 노래를. 나는 또 라디오에서 2년 동안이나 연주를 했다고 했어. 사실이니까. 직장을 잘릴 만큼 열심히 했었으니까. 그러나 앞으로 내가 하는 연주나 노래는 Opry에서 들려지길 원한다고 했어. 그리고 나는 항상 빌 먼로를 만나길 원했다고 했지’ 나는 교회에서, 장례식장에서 의붓아버지와 노래를 했고 사중창의 네 파트인 Lead, Baritone, Tenor, Bass를 모두 배웠다고 했지. 내가 빌 먼로를 만났을 때 빌에게 이렇게 말했어.
‘나는 노래의 모든 파트를 다 할 수 있다. 그러나 테너는 하고싶지 않다. 이유는 당신이 더 잘 하기 때문이다’ 라고. 바꿔 말하면 나머지 세 파트는 내가 당신보다 더 잘 할 수 있다는 의미였지. 빌은 나를 데리고 Mac Wiseman한테 가더니 Lester Flatt이 사용하던 Guitar를 가져오라고 하더군. 그 Guitar는 빌 먼로 자신의 것인 Martin D-28 Herringbone이었는데 소리가 끝내줬지.
나는 빌 먼로와 함께 ‘Poor Ellen Smith’라는 노래를 했어. 내친김에 피들러 Chubby Wise와 함께 ‘Orange Blossome Special’을 Solo로 연주도 하고. 빌이 Chubby에게 묻더군. ‘어이 Chubby 니 생각은 어때?’ Chubby가 대답하대. 빌에게 ‘대장’이라고 하면서 ‘난 Lester Flatt이 생각났어.
그런데 이 젊은 친구는 Flat을 이미 갖고 있었나 본데’ 라고. 이름의 ‘Flatt’과 Guitar의 ‘Flat’을 절묘하게 관련 시키면서 말야. 그런 거 보면 Chubby Wise의 말솜씨도 대단했어. 1949년, Martin은 Job을 얻었고 결코 겸손함을 잃지않는 진솔한 자세로 주위의 주목을 받으면서 블루그래스 보이스 밴드의 1세대가 된다. 블루그래스 보이스 밴드 1세대의 나머지 인물님들을 기술해보면 ‘Monroe’, ‘Wise’, ‘Flatt’, ‘Earl Scruggs’ 그리고 베이스 주자인 ‘Cedric Rainwater’ 등 이다. Lester Flatt을 유별나게 좋아했던 Jimmy Martin은 블루그래스 음악에 있어서 Lester Flatt이 점하는 위치를 컨트리 음악에서의 Hank Williams나 George Jones와 자주 비교하곤 했다. 마틴은 1950년부터 53년까지 활동한 후 먼로의 밴드를 떠나는데 Osborne Brothers와 함께 활동하기 위해서다. 55년까지 공연도 하고 레코딩 작업도 함께한 마틴과 오스본 브라더스는 몇장의 유명한 싱글 앨범을 발표한다. 그러나 블루그래스 음악의 유명한 밴드 중 하나인 마틴의 밴드 ‘써니 마운틴 보이스’ 때문에 마틴과 오스본 브라더스 사이에 불화가 생기는데 이때 생긴 불화는 최근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매우 골이 깊은 것이다. 이유야 어떻든 여기는 지미 마틴의 음악 인생을 다루는 자리이므로 이들 사이의 불화에 대해선 더 이상 언급을 않기로 하자. (글쎄?)
[활동 전성 시기 : 1956~1974]
1956년부터 74년까지 지미 마틴은 그의 밴드 써니 마운틴 보이스와 함께 Decca 레코드 사에서 레코딩 작업을 한다. 이 기간 동안 작업한 앨범들은 그들의 성에는 안찼지만 그래도 많은 앨범들이 히트를 한다. ‘Sunny Side Of The Mountain’, ‘Hit Parade Of Love’, ‘Oceans Od Diamonds’ 등의 곡이 공전의 히트를 하며 마틴과 써니 마운틴 보이스는 황금의 전성시기를 즐긴다. 이 기간동안 보칼과 연주를 겸한 마틴과 그의 밴드는 영향력 있는 지방 라디오 방송국인 KWKH의 Louisiana Hayride 프로그램과 WWVA의 Wheeling Jamboree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수많은 청취자를 팬으로 확보한다. Louisiana Hayride에 출연할 때 그곳 프로그램 담당자들이 마틴에게 엘비스 프레슬리도 이 프로그램에서 일렉 기타로 떴다면서 밴죠 대신 일렉 기타를 잡을 것을 요구한적이 있었다.
물론 마틴은 단호하게 그러나 정중히 거절한다. ‘나에게 그런 요구는 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내가 디트로이트에서 오스본 브라더스와 함께 연주할 때 오스본 브라더스도 내게 그러한 요구를 한적이 있었습니다만 지금은 같이 있지 않습니다’ 라는 말과 함께.
그들이 Hayride를 떠나서 Wheeling으로 옮겼을 때도 같은 요구를 받는다. 그 당시에는 다른 많은 블루그래스 음악인들도 같은 유혹을 받고 고민 많이 한 시기였다.
그러나 마틴은 그들의 요구를 거절하며 다른 곳을 전전했지만 다른 곳으로 옮길 때마다 그들은 좀더 유명해졌고 그들의 음악은 점점 진보되어 갔으며 대중들은 그런 마틴을 지금도 사랑하고 존경한다.
Wheeling 이후 마틴은 고민한다. 현재 대단한 인기를 누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틴은 늘 내쉬빌을 생각하고 있었다. 내쉬빌에가서 아무 일 않고 쉬더라도 거기서 쉬고 싶었다. Grand Ole Opry에서의 공연을 생각 하면 걸어서라도 갈 판이었다. 여기를 떠나면 이곳의 많은 청취자의 마음에 상처를 줄 수 있을 정도로 현재 인기가 대단 했지만 그것에 만족하여 안주하고 싶지 않았다. Grand Ole Opry에서 지금보다 대중적인 지지를 덜 받더라도 오매불망 Opry 생각 뿐이었다.
마틴은 블루그래스 음악 안에서도 색다른 스타일의 블루그래스 음악을 하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 또 좋은 노래를 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 마틴과 만돌린 연주자 폴 윌리암스는 많은 곡을 만들었는데 대부분은 교회에서 찬양을 위해 불렀으나 교회에서 부를 때에는 별로 주목 받지 못했다.
마틴이 내쉬빌로 활동무대를 옮기고 Decca 레코드사 프로듀서인 Silverstein과 Owen Bradley를 만나면서 마틴이 만든 곡들은 주목을 받는다.
그들은 마틴의 곡을 출판할 수 있도록 주선 하였으며 그들의 Tape에 마틴의 곡을 넣기로 한다. 당대의 유명한 가수들이 노래를 했고 그들은 그들이 부른 마틴의 곡을 블루그래스라고 불렀는데 전에는 들어보지 못한 분명한 블루그래스 스타일의 노래가 Tape에 레코딩 되어 있었다. 특히 행크 윌리암스의 노래는 완벽한 블루그래스 였다.
마틴의 레코드는 60년대에 전국 어디에서나 잘 팔렸다. Folk와 블루그래스가 한창 꽃피운 60년대에 마틴은 전국적인 순회공연을 통하여 그들이 전에 즐겼던 것과는 다른 새롭고 색다른 블루그래스 음악을 할 시간적 여유를 갖는다.
[70년대 이후 지금까지]
지미 마틴과 그의 밴드 써니 마운틴 보이스는 그들의 뛰어난 음악성으로 인하여 대단한 명성을 얻는다. Williams, J.D. Crowe, Tater Tate 그밖에 많은 연주자들이 마틴의 영향을 받으며 그들만의 멋진 길을 만들어 간다. 60년대 후반에 가진 블루그래스 연주 여행은 마틴에게 새로운 팬들을 많이 확보한 계기가 된다. 이러한 연주여행은 많은 다른 연주자들과 함께 공연 하게 되는데 1971년 Will The Circle Be Unbroken 이라는 아주 훌륭한 앨범을 발표하면서 활짝 웃는다.
3장의 레코드가 한 세트로 된 이 앨범은 전통 컨트리와 블루그래스 곡이 함께 어우러져 있는데 여기에 참여한 음악인들을 살펴보면 마틴을 포함하여 Doc Watson, Mother Maybelle Carter, Merle Travis, Roy Acuff, Earl Scruggs 등등 당대의 쟁쟁한 연주자들과 또 다른 많은 연주자들이 참여하였다.
이 앨범 세트는 컨트리와 블루그래스 음악의 이정표가 되었으며 1989년에 발표한 Circle II의 보증수표가 된다. 이 앨범에는 마틴의 곡이 6곡 포함되어 있는데 모두 마틴 자신이 불렀다. 이 골드 앨범은 무려 400만장이나 팔리는 기록을 남긴 말 그대로 골드 앨범이 된다.
1974년, 마틴은 Decca 레코드사를 떠난 후 Gusto 레이블로 6장의 앨범을 발표하고 마지막에는 자신의 고유 레이블인 Sunny Mountain Music 레이블로 앨범을 발표한다.
마틴은 자기 자신을 돌아보기를 좋아했다. 다른 것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오로지 자신이 원하는 자신만의 음악을 위하여 다른 사람들이 뭐라 하더라도 흔들림 없는 꿋꿋함으로 그의 음악 인생을 걸었다.
그는 자신에 대한 프라이드가 누구보다 강했다. 2005년도 위대하신 왕 암으로 타계하셨다.
지금도 블루그래스 음악의 전설적 인물로 블루그래스의 영광을 위해 또 영광을 누린 블루그래스의 왕! "지미 마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