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mon & Garfunkel Story
20세기 최고의 듀오로 평가받는 폴 사이먼(Paul Simon)과 아트 가펑클(Art Garfunkel) 세계 팝스계 에서 가장 시적인 가사와 완벽한 화음을 자랑하는 사이먼 앤 가펑클... 뉴욕에서 함께 자란 친구였으며 "에벌리 브라더즈"(Everly Brothers)의 스타일로 1957년 후반기에 "톰과 제리"(Tom & Jerry)라는 이름으로 첫 싱글 'Hey Schoolgirls'를 발표, 빌보드챠트 49위에 오른다.
그러나 이후의 싱글곡들은 모두 실패하고, 대학에 진학하면서 1964년 포크 록을 표방하며 톰과 제리가 아닌 사이먼 앤 가펑클로 재결합 데뷔작 'Wednesday Morning 3 A.M.'을 대중들에게 선보이지만 앨범의 실패로 다시 해체된다.
이후 프로듀서로 참여했던 톰 윌슨로 인해 재결합 톰 윌슨은 데뷔앨범 수록곡 "The sounds of silence"를 사이먼 & 가펑클에게 알리지 않은 채 일렉트릭 사운드로 둔갑시켜 1966년초 차트 정상 등극을 이뤄내게 된다.
국내에서도 60~70년대 내내 애청되면서 이 곡은 당시 차트에서 비틀스와 번갈아 가며 1위 자리 다툼을 벌였다.
정통 통기타 포크에서 '포크록'으로 재무장하며 1966년부터 이듬해까지 "I am a rock"(3위), "Homeward bound"(5위), 나중 뱅글스의 리메이크로 유명한 "A hazy shade of winter"(13위)등 일련의 히트 곡들을 쏟아낸다.
데뷔앨범부터 'Parsley, Sage, Rosemary & Thyme'까지 3장의 앨범이 차례로 비평가들의 찬사와 골드 이상의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었으며 1968년에는 센세이션을 일으킨 영화 '졸업'(The Graduate)의 사운드 트랙 작업에 참여하게 되였고 영화의 성공과 함께 앨범의 인기도 차트 9주간1위에 머므르며 엄청난 판매고를 올렸다. 사이먼 앤 가펑클의 두번째 싱글차트 1위곡 "Mrs. Robinson"이 이때 탄생을 했으며 첫 번째 그래미상 트로피도 안겨주었다. 후속곡으로 "Scarborough fair/Canticle" 11위로 인기를 얻으며 비슷한 시기에 'Parsley, Sage, Rosemary & Thyme', 'Bridge Over Troubled Water과 더불어 이들의 3대 명반으로 일컬어지는 앨범 'Bookends'가 발매되었다.
문학작품으로 평가 받기도 했던 이 앨범은 "Mrs. Robinson"과 "A hazy shade of winter"같은 기존의 히트작 외에도 "America", "At the zoo"(16위), "fakin it"(23위), "Old friends" 등이 동시에 히트를 한다.
The boxer"가 1969년에 발표되어 7위까지 오르면서 대박을 예고했는데 앨범이 발매되자 수주만에 차트 정상에 뛰어올라 무려 10주간을 머무르며 현재까지 미국서만 800만장 이상이 팔려나갔고 타이틀 곡도 싱글 차트 정상에 6주간 등극했으며 "Cecilia"(4위), 그리고 유난히도 한국에서 사랑 받았던 "El condor pasa(If I could)"(18위)는 후속타였고 13회 그래미상 시상식에선 본상 3개 부문을 포함하여 6개의 트로피를 휩쓸었다.
사이먼 앤 가펑클의 인기는 한없이 치솟았지만 둘의 사이에는 조금씩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사이먼이 거의 대부분의 곡들을 썼음에 비하여 보컬부분에서 발군이었던 가펑클은 상대적인 열등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고 'Bridge Over Troubled Water'를 녹음하면서 영화 '졸업'의 감독인 Mike Nicols가 그의 다음 작품에 가펑클이 출연할 것을 제의하는 것을 계기로 배우 활동을 원하는 가펑클과 음악을 우선시하던 Simon 사이에 마찰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1970년 이들의 최고 수작으로 손꼽히는 'Bridge Over Troubled Water'를 끝으로 이들은 각자의 길을 걷게 된다.
사이먼 & 가펑클의 해체후 소속 레코드사에선 72년 앨범 'Simon & Garfunkel's Greatest Hits'를 내놓고 돈벌이에 나섰는데 이들을 잊지 못하는 많은 팬들의 성원에 힘입어 현재까지 미국내 1300만장의 판매고를 기록하고 있으며 이 앨범에선 처음으로 싱글 발매되는 "America"(97위)와 라이브 버전의 "For Emily, whenever I may find her"(53위)이 사랑 받고있다.
1980년에 다시 함께 활동을 시작했는데 1981년의 센트럴 파크 콘서트에는 무려 50만의 팬들이 모여 그들의 변함없는 인기를 과시하기도 했지만 재결합 앨범인 'Think Too Much'를 내놓은 후 이들은 또 다시 결별에 합의하게 된다.
아마도 Simon의 노랫말이 그룹으로 노래하기에는 적당하지 않을 만큼 지나치게 개인적인 느낌과 경험을 다루고 있기 때문인 듯.. 1990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정되는 영광을 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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