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ight They Drove Old Dixie Down - The Band
Virgil Caine is the name, and I served on the Danville train,
'Til Stoneman's cavalry came and tore up the tracks again.
In the winter of '65, We were hungry, just barely alive.
By May the tenth, Richmond had fell, it's a time I remember, ohso well,
The Night They Drove Old Dixie Down, and the bells wereringing,
The Night They Drove Old Dixie Down, and the people weresingin',
They went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Back with my wife in Tennessee, When one day she called to me,
"Virgil, quick, come see, there goes Robert E. Lee!"
Now I don't mind choppin' wood,
and I don't care if the money's no good.
Ya take what ya need and ya leave the rest,
But they should never have taken the very best.
Like my father before me, I will work the land,
Like my brother above me, who took a rebel stand.
He was just eighteen, proud and brave,
But a Yankee laid him in his grave,
I swear by the mud below my feet,
You can't raise a Caine back up when he's in defeat.
남북전쟁에 패한 남부군을 노래한 곡으로
포크 싱어Joan Baez 가 다시 불러서
많이 알려진 곡 입니다.
캐나다 밴드이면서도 가장 미국 토속적인 음악을 펼쳐 보였던 더 밴드(The Band)
1960년대 말 결성되어 1970년대 중반 해체되기까지 짧은 전성기를 보냈지만,
포크록보다 더 토속적인 이른바 컨트리 록(Country Rock)을
대중에게 알린 선구자적 밴드로 자리하며 전설적 거장으로서
록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지극히 미국적 정서를 담고 있기 때문에
미국에서 부여하는 가치에 비해 국내에서의 인지도는 떨어지지만
그들의 음악에 대한 평은 어떤 일류 뮤지션에게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 최상의 것이었다.
더 밴드의 역사는 1950년대 말부터 활동한 로커빌리 싱어
로니 호킨스(Ronnie Hawkins)로부터 시작된다.
미국 아칸소 출신으로 음악 동료 레본 헴(Levon Helm, 드럼)과 함께
캐나다로 자리를 옮긴 로니는 캐나다 뮤지션들을 모아 자신의 밴드인 호크스(Hawks)를 만들었다.
재능 있는 캐나다 젊은이들로 만들었지만 팀이 정돈된 상태는 아니었다.
정돈이 필요함을 느낀 로니는 ‘Suzie Q’로 유명한 데일 호킨스(Dale Hawkins)의 밴드에 있던
천재 기타리스트 로이 부캐넌(Roy Buchanan)을 욕심 내었고,
로이 부캐넌을 캐나다에 자리한 자신의 밴드에 끌어들였다.
하지만 로이가 한 밴드에 정착할 사람이던가…
로이는 밴드에서 베이스를 치고 있던 젊은이에게 기타를 가르친 뒤 팀을 떠나고 만다.
로이가 기타를 가르친 이 젊은이가 훗날 더 밴드를 이끈 청출어람의 인물
로비 로버트슨(Robbie Robertson)이었다.
이후 릭 단코(Rick Dankko, 베이스), 리차드 매뉴얼(Richard Maruel, 피아노),
가스 허드슨(Garth Hudson, 오르간)가 팀의 멤버들로 자리하면서
로니 호킨스 앤 더 호크스(Ronnie Hawkins & the Hawks)는 캐나다 최고의 인기 팀으로 성장해 나갔다.
1963년, 로니와 결별하게 된 호크스는 레본 헴을 전면에 내세우고
레본 앤 더 호크스(Levon & the Hawks), 캐네이디언 스콰이어즈(The Canadian Squires)
두 가지 이름을 동시에 사용하며 활동을 이었다.
그러던 중 로비 로버트슨과 레본 헴은 밥 딜런(Bob Dylan)의 레코딩 세션으로
참여할 기회를 얻게 되었고, 이 것이 계기가 되어 밥 딜런의 백업 밴드로 활약할 수 있었다
1965년 말 레본 헴이 팀을 떠나자 드러머를 미키 존스(Micky Jones)로 교체한 호크스는
밥 딜런의 [Blonde On Blonde] 앨범에 참여하는 등 밥 딜런과 교류했고,
1967년 ‘더 밴드’라는 새로운 이름을 걸고 독자적 뮤지션으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1968년 캐피톨(Capitol)과 계약한 이들은 그 해 데뷔 앨범 [Music for the Big Pink]를 발표,
컨트리 록 넘버인 ‘The Weight’을 히트시킨다.
미국 차트 40위, 영국 차트 21위에 오르며 큰 상업적 성공을 거두어 들이지는 못했지만
앨범과 이 곡 모두 평단의 극찬을 받으며 밴드는
딜런의 백밴드에서 독자적인 정상의 밴드로 올라섰고,
이어지는 앨범 ‘The Night They Drove Old Dixie Down’, ‘Up on Cripple Creek’ 등의 히트곡이 수록된
1969년작 [The Band] 역시 찬사를 받았다.
1970년 동명의 ‘Stage Fright’이 수록된 [Stage Fright]로 앨범 차트 5위의
가장 큰 상업적 성공을 기록했지만 이들의 명성은 조금씩 약화되기 시작했다.
1971년 [Cahoots], 1973년 [Moondog Matinee]을 발표하고,
1974년 밥 딜런과 다시 조우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었지만
멤버들의 마약 중독 등 불안한 길을 걸으며 1976년 추수감사절에 해체를 선언하게 된다.
밥 딜런은 물론, 머디 워터스(Muddy Waters), 에릭 클랩튼(Eric Clapton),
닐 영(Neil Young), 밴 모리슨(Van Morrison), 조니 미첼(Joni Mitchell) 등
초절정 뮤지션들이 게스트로 참여한 이들의 해산 공연
‘The Last Waltz’는 명감독 마틴 스콜세지(Martin Scorsese)가 영화하 하여 길이 남아있기도 하다.
1983년 로버트슨을 제외한 멤버들이 다시 모여 투어를 펼치는 등
이들의 재결합에 대한 기대가 컸지만 1986년 리차드 매뉴얼이 사망하면서
온전한 밴드의 재결합은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이후 로비 로버트슨 없이 팀을 계속 이어온 이들은
1993년 16년만에 더 밴드의 이름을 내 건 정규 앨범을 발표했고,
이후 1996년 [High on the Hog], 1998년 30주년을 기념하는 [Jubilation]을 발표하는 등
온전치는 않지만 꾸준한 활동을 이어갔다.
하지만 팀을 이끌었던 릭 단코마저 1999년 세상을 떠나면서
더 이상 진정한 의미의 더 밴드를 만나볼 수는 없게 되고 말았다.
글/아시아뮤직넷 이용지(rodydwl@asiamusic.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