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ter Family No More the Moon Shines on Lorena
No More The Moon Shines On Lorena
Way down upon the old plantation Old Massey used to own me as a slave He had a yeller gal he called Lorena And we courted where the wild bananas waved
For long years there we courted And we were as happy as one And my hard work for did Massey And the happiness of life had just begun
No more the moon shines on Lorena As we'd sit and watch the coons among the corn And the possums laying on the wild bananas And the old owl a hootin like a horn
One day I called to see my dear Lorena I thought she would meet me at the gate But they took her away to old Virginy And left me to mourn for her fate
For years I have longed to see her And the thoughts of her was ever in my head One day Massey read me a letter Telling me the Lorena she was dead
But I know that her soul has gone to heaven And there she is ever free from pain And to her a brighter crown is given And no more she will wear the darkie's chain
Carter Family, The / 카터 패밀리 Sara Carter Maybelle Carter 카터 패밀리는 컨트리 음악 역사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그룹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은 애팔래치아 산악 지방에서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는 민요와 약장수 쇼(Medicine Show), 민스트럴 쇼(Minstrel Show), 보드빌(Vaudeville) 같은 유랑 악단을 통해 퍼져 나가던 어설픈 형태의 컨트리 음악을 완벽한 형태의 '노래 형식(Song Form)'으로 만들어 컨트리 음악의 모범 답안을 제시했다. 또한 여성 멤버 메이벨이 창조한 독특한 기타 주법은 컨트리 기타의 전범이었다. '카터 피킹(Carter Picking)'으로 불리는 이 연주법은 조율을 할 때 기본적인 기타의 음보다 낮게 튜닝을 한 다음, 베이스로 멜로디를 표현해내고, 고음 줄로 리듬을 처리하는 방식. 지금은 컨트리 음악, 특히 블루그래스 음악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기타 테크닉이지만, 192,30년대 당시만 해도 감히 생각지도 못한 파격적인 연주법이었다. 밴드 결성 1년 뒤인 1927년, 카터 패밀리는 빅터 레코드(Victor Records)사의 음반 기획자 랄프 피어(Ralph Peer)가 공개 오디션을 갖는 다는 신문 광고를 접하고, 테네시주의 브리스톨로 떠났다. (당시 브리스톨은 컨트리 음악의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곳으로 소문이 나면서, 전국 각지에서 음반 제작자들이 모여들었던 조그만 시골 마을이었다.) 카터 패밀리는 힐 빌리(Hillbilly) 음악의 대부 랄프 피어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고, 1928년부터 빅터 레코드사와 계약을 체결하고, 'Wabash cannonball', 'I'm thinking tonight of my blue eyes', 'John hardy was a desperate little man', 'Wildwood flower', 'Keep on the sunny side' 등의 주옥같은 컨트리 노래들을 발표했다. 특히 1928년에 발표한 'Wildwood flower'는 컨트리 기타리스트라면, 꼭 한 번 탐구하고 넘어가야만 하는 명곡으로 평가받고 있다 1929년 카터 패밀리는 전국적인 스타로 발돋움했지만, 곧바로 닥쳐온 대공황으로 인해 미국 전역을 돌며 가질 예정이던 순회 공연이 불가능하게 되는 등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결국 돈이 궁해지자, 멤버들은 일자리를 찾기 위해 고향 버지니아를 떠나야만 했다. A.P.는 디트로이트로 향했고, 메이벨은 남편과 함께 워싱턴에 정착했다. 그룹의 내리막길은 계속 됐다. A.P.는 사라와 1932년 별거에 들어갔고, 7년 뒤인 1939년 이혼을 했다. 그러나 이런 와중에서도 카터 패밀리는 텍사스와 멕시코의 국경 지대에 있는 라디오 방송국에서 공연 활동을 이어나갔고, 데카(Decca), 콜롬비아(Colombia), 빅터 레코드사 등을 거치며 음반 작업도 꾸준히 했다. 하지만 1943년 사라가 새 남편 코이 베이즈(Coy Bayes)를 따라 캘리포니아로 이주하면서, 카터 패밀리의 신화로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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